한 초등학교 교사가 있었다.
평상시 떠들썩한 아이들도 그날은 진지하게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진심으로 몰입하고 있었다.
왠지 으쓱해진 그는 마지막으로 비장의 괴담인
"소의 목"을 꺼내기로 했다. 그는 목소리를 낮추고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금부터 이야기하는 것은 '소의 목'이라고 하는 괴담이다. 여기에서 '소의 목'이란……. "
그런데 그가 이야기를 얼마쯤 진행하자 버스 안에서 이변이 일어난다.
아이들이 이야기를 듣는 와중에 너무나 무서운 나머지 저마다 "선생님, 이제 그 이야기는 그만 하세요! "라며 애원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어느 아이는 새파랗게 질려 귀를 막고, 다른 아이는 큰 소리로 울부짖는다.
오줌을 지린 아이도 있었다. 그럼에도 교사는 짓궂게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의 표정은 마치 신이 들린 사람 같았다.
잠시 후에 버스가 갑자기 정지했다. 이변을 느끼고 제정신으로 돌아온 그가 운전석을 보자, 버스의 운전기사가 비지땀을 흘리며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 역시도 공포에 질려 더 이상은 운전을 지속하기 어려워서 차를 세웠을 것이다.
교사가 다시 주위를 둘러보니 학생들은 당황한 나머지 실신한 아이도 있었다.
그 이후로, 그가 두 번 다시 "소의 목"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은 없었다고 한다….
'소의 목'이란 세상에서 제일 무서우면서 가장 유명한 괴담이지만, 그 지나친 공포 때문에 듣는 자로 하여금 미치거나 죽게 만든다.
따라서 그 이야기가 무엇인지는 아무도 들은 바 없다는 전설적인 이야기.
많은 사람이 오랫동안 거짓말이나 유언비어로 의심해왔으나….
메이지 유신 시기, 폐번치현 절차에 따라 일본 전국의 측량과 인구조사를 하던 때의 동북지방에서 있었던 이야기.
과거 마을이었으나 이제는 폐허로 변한 땅을 조사하던 한 공무원이 큰 나무의 밑동으로부터 대량의 인골과 함께 소의 머리와 흡사한 동물의 뼈를 발견했다.
공무원은 조사 대장에 인골의 수를 기록해 측량을 마치고 가장 가까운 남쪽의 마을로 옮겼다.
그곳에서도 조사를 마친 공무원은, 숙박을 위해 숙소에 머무르는 도중 숙소의 주인에게 앞서 인골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자 숙소의 주인은 "관계가 있을지 모르지만…." 이라며 운을 뗀 뒤 아래와 같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에도 막부 말기(19세기 초). 텐포(天保/てんぽう) 3년(1832년. "텐포"는 연호)부터 일본에는 수년에 걸쳐 엄청난 대기근이 덮쳤다.
그 유명한 에도 말기의 '텐포 대기근'이다.
당시의 기록에 따르면 "쓰러진 말에 이빨을 박고 날고기를 먹으며, 굶주려 쓰러진 시체를 들개나 새가 와서 뜯어먹는다.
부모와 자식 형제간에도 비정하게 음식을 서로 빼앗아 그야말로 축생만도 못한 상황이다" 라고 적힌 비참한 상황이었다.
텐포 4년(1833년)의 가을 어느 깊은 밤, 이 남쪽 마을을 한 외지인이 찾았다.
휘청휘청 걷는 그의 몸뚱이는 사람이었으되, 머리는 그야말로 소와 같았다.
몇몇 마을 사람들이 놀라워하며 다가가 붙잡으려 하는 그때, 낫과 곡괭이 등을 손에 쥔 이웃마을 사람들이 수십 명씩 떼를 지어 나타났다.
그들은 공포 분위기를 잔뜩 조성하며
"소몰이 축제는 어디에도 발설하지 마라."
그들은 저마다 이렇게 외치며 그 외지인을 붙잡고 어둠 속으로 사라져갔다.
날이 밝자 마을 곳곳에 그 이야기가 퍼져 나갔지만 아무도 이웃마을까지 확인하러 나가지는 않았다.
그리고 다음 해, 그 이웃마을을 다녀온 사람이 "벌써 그곳에 사람이나 가축의 기척은 어디에도 없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전했다.
이후 이들은 오랫동안 그 사라진 이웃마을을 '소의 마을'이라 불렀지만, 시간이 흘러 이제는 그 이름조차 부르는 사람도 없다.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숙소의 주인은 이야기를 마치고 허겁지겁 뒤처리를 위해 자리를 떠났다.
공무원은 이 이상한 이야기에 대해 즉각적인 해석은 보류하기로 했다.
그는 다시 관청으로 돌아와 조사 대장을 마무리할 즈음에 이 이야기를 떠올리고, 친밀한 선배에게 해석을 요청했다.
선배는 에도 말기 텐포 연간의 주민 대장을 조사하면서 자신의 견해를 말했다.
"대기근 당시엔 굶어 죽은 사람을 가족들이 식량으로 삼아 먹었던 일이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야기의 마을에서는 시체뿐 아니라 약한 사람을 잡아먹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살아있는 사람을 잡아먹는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면하고자, 그 의식을 '소몰이 축제'라고 칭해 소의 머리 가죽을 씌워놓고 잡아 죽인 것은 아닐까?
당시 그 폐허에서 헤아린 인골의 수를 따져보면 거의 마을 주민 전원에 해당한다. 소의 뼈 역시 마을에서 길렀을 가축의 수와 일치한다.
기근의 비참함은 말로 형용하기 어렵다. 어쩌면 주민은 물론 친형제와 부부 간에도 수라와 같은 지경이 되어 이미 사람이라고는 칭할 수 없었던 것이겠지.
또한, 이런 사실은 외부의 누구에게도 알릴 수 없기에, 마을은 계속 고립 속에서 황폐해져 남쪽 마을을 포함한 어디에도 도움을 요청할 수 없었으리라.
사람이 서로 잡아먹는 비참함은 두 번 다시 반복되어서는 안 되지만, 이 일은 묻어두는 게 좋을 것 같다. "
선배의 말을 깊이 받아들인 공무원은, 이후 누구에게도 이 이야기를 발설하지 않고 속으로만 묻어두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러일전쟁 시기. 고령으로 병상에 누워있던 그 남자는 전란의 슬픔을 가누지 못하고 손주들을 불러모아 무심코 이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 손자 중 한 사람이 이후 뒤늦게 진실을 알아채고 말았다.
실은 아무 관계가 없다던 그 남쪽 마을 사람들이, 이웃마을 사람 전원을 "소몰이 축제"라 칭하며 한꺼번에 잡아먹은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 많은 뼈를 누가 어떻게 묻었겠는가!
그렇게 소의 목 이야기는 '누구에게도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는 저주의 단서가 붙었다.
누구의 입에도 오르지 않고 내용도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이 소의 목 이야기를 알고 있다.
무언가의 본질을 파헤치는 이야기는, 그 자체에 영혼이 깃들어 점차 사람들 사이로 영향을 끼쳐나가기 때문이다.
출처- 무서운스토리